Essay: 미국 진출
나는 1986년 겨울에 한국의 모(L) 그룹사로 입사 하였다. 대학 졸업은 2월이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대개 12월에 미리 사원을 뽑았기 때문에 12월에 교육을 그룹 연수원에서 받고, 1월부터 정식으로 근무 한것 같다. 그당시만 해도 미국의 큰기업들만 미국에 들어 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 L그룹으로 회사를 옮겼다.
1980년초반 부터미국의 큰그룹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 하였다. 1990년부터는 모든 분야의 미국 기업들이 많이 한국에 진출 하였다. 또한 그전에는 한국에 연락 사무실을 운영 하던 기업 들이 본격적으로 투자 하기 시작 하였다.
첫번째 L 그룹에서 다는 L그룹으로 이전한 이유는 첫번째 그룹은 한국 내수 그룹중 제일 큰곳이었는데, 나자신이 해외쪽에 관심이 많아 L그룹(제조및 세계화 그룹)으로 이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 하여, 이때부터 세계 여행을 하기 시작 하였다. 당시 다국적 기업의 사장님도 그룹사 출신으로 이미 세계화가 되어 있었다. 그분하고 같이만 있어도 세계화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한국의 기업들이 1990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 하였다. 한국의 제품들이 일제에 밀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2013년 현재는 한국제품이 전자 쪽에서는 일본제품을 품질,가격면에서 앞질렀고, 현대, 기아자동차도, 혼다와 코요다를 제외하곤 니산, 미쓰비시를 앞질렀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다. 인구는 거의 5천만이 된다. 거의 모든 학부모가 자녀 교육으로 지출되는 비용과 그 치열함에 시달린다. 인터넷, 디지탈 및 통신의 혁명으로 세계가 동시에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수 있게 되었다.
나역시 한국에 손님들과 계약을 맺고, 매일 한국으로 부터 이메일, 또는 우편으로 서류를 받아 미국 현지 사무실에서 업무 처리 한다. 또한 한국의 저명한 판사 출신 실력파 중견 변호사와도 상호 업무 협조 체제에 들어가 자주 교신한다.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의 브랜드를 많이 볼수 있다. Tom & Tom 커피샾, 파리바께트, 북창동 순두부, 현풍 할매집, ooo족발집, ooo미용실, ooo 결혼 정보 센타. 이미 미국에 한국의 교포 인원이 공식은 100만이 넘고, 비공식은 200만정도 된다. 1년에 미국에 여행하는 한국인이 120만이 넘는다. 미국 각지역의 한인타운은 영어 한마디 안해도 살수 있다.
또한 학군좋은 미국 초중고등학교에는 이미 한국학생들이 많이 있다. 유명한 학교에는 반드시 한국 학생들이 있다. 이곳 얼바인은 한국인들은 미국의 8학군, 한국의 9학군이라 부를정도로, 명문 학교 들이 있다. 여기에서 Ivy 리그 대학과, MIT, 스탠포드, 버클리, UCLA등 세계적인 대학으로 진출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많은 한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서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과 교류할수 있는 길을 만든다면, 개인의 사업도 성공하고, 국가도 발전 할 수 있을것 같다. 한국의 그룹사들이 1990년초부터 세계화를 시작 하였고, 이제는 개인들이 세계화를 해야 할 때인것 같다.
나는 1986년 겨울에 한국의 모(L) 그룹사로 입사 하였다. 대학 졸업은 2월이었지만, 한국 기업들은 대개 12월에 미리 사원을 뽑았기 때문에 12월에 교육을 그룹 연수원에서 받고, 1월부터 정식으로 근무 한것 같다. 그당시만 해도 미국의 큰기업들만 미국에 들어 왔다. 그리고 나는 다른 L그룹으로 회사를 옮겼다.
1980년초반 부터미국의 큰그룹들이 한국에 진출하기 시작 하였다. 1990년부터는 모든 분야의 미국 기업들이 많이 한국에 진출 하였다. 또한 그전에는 한국에 연락 사무실을 운영 하던 기업 들이 본격적으로 투자 하기 시작 하였다.
첫번째 L 그룹에서 다는 L그룹으로 이전한 이유는 첫번째 그룹은 한국 내수 그룹중 제일 큰곳이었는데, 나자신이 해외쪽에 관심이 많아 L그룹(제조및 세계화 그룹)으로 이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다국적 기업으로 이직 하여, 이때부터 세계 여행을 하기 시작 하였다. 당시 다국적 기업의 사장님도 그룹사 출신으로 이미 세계화가 되어 있었다. 그분하고 같이만 있어도 세계화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한국의 기업들이 1990년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 하였다. 한국의 제품들이 일제에 밀려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2013년 현재는 한국제품이 전자 쪽에서는 일본제품을 품질,가격면에서 앞질렀고, 현대, 기아자동차도, 혼다와 코요다를 제외하곤 니산, 미쓰비시를 앞질렀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고, 국토가 좁다. 인구는 거의 5천만이 된다. 거의 모든 학부모가 자녀 교육으로 지출되는 비용과 그 치열함에 시달린다. 인터넷, 디지탈 및 통신의 혁명으로 세계가 동시에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수 있게 되었다.
나역시 한국에 손님들과 계약을 맺고, 매일 한국으로 부터 이메일, 또는 우편으로 서류를 받아 미국 현지 사무실에서 업무 처리 한다. 또한 한국의 저명한 판사 출신 실력파 중견 변호사와도 상호 업무 협조 체제에 들어가 자주 교신한다.
내가 있는 캘리포니아에는 한국의 브랜드를 많이 볼수 있다. Tom & Tom 커피샾, 파리바께트, 북창동 순두부, 현풍 할매집, ooo족발집, ooo미용실, ooo 결혼 정보 센타. 이미 미국에 한국의 교포 인원이 공식은 100만이 넘고, 비공식은 200만정도 된다. 1년에 미국에 여행하는 한국인이 120만이 넘는다. 미국 각지역의 한인타운은 영어 한마디 안해도 살수 있다.
또한 학군좋은 미국 초중고등학교에는 이미 한국학생들이 많이 있다. 유명한 학교에는 반드시 한국 학생들이 있다. 이곳 얼바인은 한국인들은 미국의 8학군, 한국의 9학군이라 부를정도로, 명문 학교 들이 있다. 여기에서 Ivy 리그 대학과, MIT, 스탠포드, 버클리, UCLA등 세계적인 대학으로 진출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많은 한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서 각자의 분야에서 한국과 교류할수 있는 길을 만든다면, 개인의 사업도 성공하고, 국가도 발전 할 수 있을것 같다. 한국의 그룹사들이 1990년초부터 세계화를 시작 하였고, 이제는 개인들이 세계화를 해야 할 때인것 같다.
미국 사업 진출 II
인터넷, 디지탈 및 통신의 혁명으로 세계가 순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수 있게 되었다. 즉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 문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한국에서나 타주(뉴욕과 시차 3시간)에서 온 메일을 일으며 하루를 시작 한다. 차타고 사무실에 출근 하면서 중간에 도착한 메일을 읽고 머리속으로 생각 하면서 간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있다.
그전에 1986년에 내가 처음 회사 다닐때부터 1990년 초반까지 지방 회사의 영업소와 연락 하려면, 편지를 써서 행랑에 집어 넣으면, 행랑을 옮기는 회사가 와서 픽업해서 고속 버스 회사에 보내면 고속버스가 그곳에 도착하고, 지방의 행랑 회사가 그것을 가지고 지방 영업소에 배달 하였다.그당시 미국과의 교신은 더욱 쉽지 않았다.
이제는 동시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교신하고, 미국의 현지에 비지니스 내는것이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에 사업체를 내는 일보다 더욱 자주 일어 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할려면 사업체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사업체에 1인으로 법인 설립이 가능 하고,자본금도 필요 없다. 대부분 주가 이에 해당 된다. 그래서 언제든지 누구나 구애없이 법인을 자금없이도 세울수 있는것이다. 물론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로펌등은 회사를 차리려면,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인 설립이 자유롭다.
그리고 이법인을 수립이전 한국에 사업체가 있으면 한국의 지사로 설립하여 주재원 비자를 신청 할수 있다. 주재원 비자의 자격이 되려면, 지난 3년중 1년상을 한국의 모기업에 간부로 근무 하여야 하고, 기술직은 간부가 아니라도 가능 하다.
한국에 회사가 없는 경우는 투자 비자로 신청해야 한다. 이경우는 단순한 법인 설립으로는 불가능하고, 상당한 액수(Substantial Amount)를 투자 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20만불 정도를 투자 하면 된다고 변호사들이 말한다.
또한가지는 만일 미국과의 무역양이 그회사의 전체양에 50%를 넘는다면, 무역회사를 설립하여,무역인 비자를 신청 하면 된다. 미국으로 진출 한다고 결심하면, 나머지 방법은 경험이 풍부하고,성실한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면 된다.
위의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 입니다. 각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 만 하시기 바랍니다.
U.S. Immigration Law Offices of Eui Suk Suh
미국 이민법 변호사 서 의 석
홈페이지: www.kevinsuh.com
인터넷, 디지탈 및 통신의 혁명으로 세계가 순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수 있게 되었다. 즉 세계가 하나가 되었다. 문뜨자마자, 스마트폰으로 한국에서나 타주(뉴욕과 시차 3시간)에서 온 메일을 일으며 하루를 시작 한다. 차타고 사무실에 출근 하면서 중간에 도착한 메일을 읽고 머리속으로 생각 하면서 간다. 거의 잠자는 시간 빼놓고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있다.
그전에 1986년에 내가 처음 회사 다닐때부터 1990년 초반까지 지방 회사의 영업소와 연락 하려면, 편지를 써서 행랑에 집어 넣으면, 행랑을 옮기는 회사가 와서 픽업해서 고속 버스 회사에 보내면 고속버스가 그곳에 도착하고, 지방의 행랑 회사가 그것을 가지고 지방 영업소에 배달 하였다.그당시 미국과의 교신은 더욱 쉽지 않았다.
이제는 동시 실시간으로 인터넷으로 교신하고, 미국의 현지에 비지니스 내는것이 옛날에 지방에서 서울에 사업체를 내는 일보다 더욱 자주 일어 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할려면 사업체가 있어야 한다. 미국은 사업체에 1인으로 법인 설립이 가능 하고,자본금도 필요 없다. 대부분 주가 이에 해당 된다. 그래서 언제든지 누구나 구애없이 법인을 자금없이도 세울수 있는것이다. 물론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 로펌등은 회사를 차리려면, 변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인 설립이 자유롭다.
그리고 이법인을 수립이전 한국에 사업체가 있으면 한국의 지사로 설립하여 주재원 비자를 신청 할수 있다. 주재원 비자의 자격이 되려면, 지난 3년중 1년상을 한국의 모기업에 간부로 근무 하여야 하고, 기술직은 간부가 아니라도 가능 하다.
한국에 회사가 없는 경우는 투자 비자로 신청해야 한다. 이경우는 단순한 법인 설립으로는 불가능하고, 상당한 액수(Substantial Amount)를 투자 해야 한다. 실무에서는 20만불 정도를 투자 하면 된다고 변호사들이 말한다.
또한가지는 만일 미국과의 무역양이 그회사의 전체양에 50%를 넘는다면, 무역회사를 설립하여,무역인 비자를 신청 하면 된다. 미국으로 진출 한다고 결심하면, 나머지 방법은 경험이 풍부하고,성실한 이민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면 된다.
위의 글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 입니다. 각자의 의견이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 만 하시기 바랍니다.
U.S. Immigration Law Offices of Eui Suk Suh
미국 이민법 변호사 서 의 석
홈페이지: www.kevinsuh.com